방송의 국어 오용 사례

드라마 속의 비표준어

김희진(金希珍) / 국립국어연구원

짜임새 있는 극본, 탄탄한 연기(演技), 뛰어난 연출, 화면을 압도하는 화려한 의상……. 텔레비전 사극 ‘용의 눈물’에 쏟아졌던 찬사였다. 동시대에 살면서 실제 상황을 접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기도 했다. 장엄한 효과 음악도 가슴 설레게 했다. 그러나 대사와 해설에서 문득문득 들리는 몇몇 어사(語辭)가 가슴을 아리게 했다. 두 회(17·18회)분을 대상으로 그 예를 제시한다.

(1) 침식(寢食)을 잃으실 정도입지요. <제17회분, 박 내관(內官)이 이방원(李芳遠)의 처 민 씨에게>
문면(文面) 그대로라면 잠자리도 빼앗기고 음식도 도둑맞은 셈이 된다. 여기에서는 “어딘가에 몰두하여 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먹는 것도 잊어버린다”는 뜻으로 봐야 할 것이므로, ‘잃으실[失物]’이 아닌‘잊으실[忘却]’로 써야 할 것이다.

(2) 생각과 염려도 없이 과거 판을 벌렸단 말이냐? <제17회분, 이방원 처가 내관에게>
‘벌리다’는 ‘나열(羅列)하다’를, ‘벌이다’는 ‘시행(施行)하다’를 각각 가리키므로 여기에서는 ‘벌였단’이 된다. 또 ‘생각’이 있는데 ‘염려’를 따로 쓸 필요까지는 없을 듯싶으니, “생각도 없이 과거 판을 벌였단 말이냐?”로 고치면 간결해진다.

(3) 글쎄올습니다. <다수>
‘표준어 규정’ 제17항에서 ‘-올시다’를 표준어로, ‘-올습니다’를 비표준어로 분명히 규정해 놓았는데도 고시 후 10년이 넘도록 ‘-올습니다’가 이 드라마를 비롯하여 여러 프로그램에서 거침없이 나오고 있는 것은 통탄할 노릇이다. 다만, 이 극 속에서 야은(冶隱) 길재(吉再)가 ‘글쎄올시다’라고 모처럼 말한 것은 다행이라 하겠다.

(4) 뫼시어라/뫼시고 <다수>
국어사전에서 ‘뫼시다’를 현대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도 상당히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 말을 고어(古語)로서 썼다고 답변한다면 고어로 쓸 수 있는 말은 모두 고어로 바꾸어 써야 형평의 원칙에 맞을 것이다.

(5) 유명한 야은(冶隱)의 시귀절(詩句節)이나 <제18회분, 해설>
‘귀절(句節)’이 ‘구절’의 비표준어(‘표준어 규정’ 제13항)이니 ‘시 구절’로 써야 한다.

(6) 회암사에 들려 <제18회분, 왕이 중전과 장군에게>
“지나가는 길에 잠깐 거치다”라는 뜻을 가진 말은 ‘들르다’이니 여기에서는 ‘들러’가 된다.

(7) 그에 걸맞는 새 도읍지를 구해야 한다는구려. <제18회분, 도당(都堂)에서>
좋다─‘좋는’, 부드럽다─‘부드럽는’에서 ‘좋는’이나 ‘부드럽는’을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걸맞다’의 관형형은 ‘걸맞는’이 아닌 ‘걸맞은’이다.
발음도 ‘표준 발음법’에 따라야 한다. 다음 ‘낯이’와 ‘풀잎을’은 앞말 받침 ‘ㅊ’과 ‘ㅍ’을 뒤에 오는 조사 ‘이, 을’에 연음하여 ‘[나치], [풀리플]’로 발음해야 한다.

(8) 어쩐지 낯이 [나] 익은 듯하구려. <제17회분, 이방원이 박포(朴苞)에게>

(9) 호랑이가 풀잎을 [풀리] 먹자니. <제17회분, 왕사가 왕과 통 장군에게>

이 드라마는 여러 면에서 뛰어난 작품이면서도 위에서 지적한 몇몇 예와 같이 언어 사용 면에서 다소 아쉬운 감을 주었다. 이 밖에도 어휘 선택이 부적절하거나 동어가 반복되는 예들도 나타난다. 같은 방송국 한쪽에서는 바른 말 고운 말을 보급하고자 애쓰고 있는데 바로 그곳에서 이렇듯 어법에 맞지 않는 말들을 수백만 수천만 시청자(국민)에게 들려준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오용(誤用)이 국민의 언어 생활에 적잖은 혼란과 지장을 준다는 것을 깨달아 국어를 바로 사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