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특집

553돌 한글날에 조음하여

심재기(沈在箕) / 국립국어연구원장

우리 정부는 몇 해 전, 온 세계에 터놓고 자랑할 우리나라 문화 상징 열 가지를 선정한 바 있다. 그 가운데에서 첫 번째로 손꼽히는 것이 우리의 고유 문자 ‘한글’이다. 아마도 한국 사람이라면 한글을 우리나라의 첫 번째 문화 상징으로 선정한 사실에 대해 이의(異議)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한글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正體性)을 증명하는 움직일 수 없는 기본 자산이다. 그러나 이 한글이 태어날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증명하고 확립하는 문화 상징이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문화사의 흐름과 함께, 한글은 적어도 세 번쯤 다시 태어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글의 첫 번째 태어남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세종 25년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첫 선을 보인 것이다. 이때에 한글이 수행해야 했던 사명은 크게 세 가지였다. 하나는 우리나라 한자음(漢字音)의 정확한 표기였고, 둘은 중국어를 비롯한 당대의 중요 외국어인 왜어, 만주어, 몽고어 등을 표기하는 것이었으며 셋은 일반 백성들의 생활 언어를 적는 것이었다. 뜻글자인 한자(漢字)만 문자로 생각했던 당대의 지식인들은 이 훈민정음이 문자로서는 한 등급 떨어지는 발음 부호 체계라는 인식을 떨쳐버리지 않았었다. 비록 일반 백성들에게 생활 언어를 적도록 배려한 부분이 기초 교육 및 생활 문자로서의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긴 하였으나, 공문서의 작성이나 학술적 저술과 같은 중요 문예 활동은 여전히 한자를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고급 문자는 한자였고 대중 문자는 한글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한자가 우대되고 한글이 보조 문자의 기능을 담당하는 이중 체계는 19세기 말엽 개화기에 이르러 변화를 입는다. 이때가 한글의 두 번째 태어남이다. 그리고 이 기간은 20세기 말인 오늘에까지 이어진다. 이 기간은 국한 혼용(國漢混用)이 우세하였던 전반기와 한글 전용이 확산된 후반기로 갈라진다. 국권(國權)을 잃게 되는 위기에 처하여 나라를 잃지 않겠다는 안간힘은 극단의 국수적(國粹的) 민족주의를 배태하게 되었고, 그러한 사상(思想)을 받쳐주는 민족 문화 상징으로서 한글은 우리말과 함께 우리 민족이 의지해야 할 가장 큰 버팀목이었다.
   그러나 결국 나라 잃은 설움은 서른여섯 해나 계속되었고, 그 기간 중에 한글과 우리말만 온전히 지키면 민족이 살아난다는 믿음이 확산되었다. 해방이 되고 대한민국이 건설되자 ‘한글만 가지면’이라는 믿음에 가속도가 붙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글 전용법이 만들어지고 한글 전용은 여러 분야로 확대되었다. 그런데 문화(文化)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국수적 민족주의와는 함께 설 수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오랜 역사를 통해 인류의 총체적인 지식이 슬기롭게 쌓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나간 2,30년간 짐짓 한자 가르치기를 게을리하면서 한글 전용을 확대한 결과, 그 부작용이 여러 분야에서 노출되기 시작하였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지식(知識)의 전수(傳授)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상이 벌어졌다. 학문과 기술의 대중화에는 한글이 기여하지만, 학문과 기술의 발전(發展)과 심화(深化)에는 그만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이러한 시점(時點)에 이르러 한글은 세 번째 태어남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새롭게 한자와 한글이 공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21세기는 문화 전쟁이 벌어지리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전통 문화를 비롯한 동양 문화는 21세기 문화 전쟁의 기본 무기가 될 것이다. 그것들은 한자의 이해와 사용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문자 생활에서 ‘한글만 가지면’이라는 생각을 과감히 떨쳐 버려야 할 것이다. 한글만 쓰면 (이 생각에는 ‘고유어만 사용하면’이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저절로 나라사랑 겨레사랑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 나라와 겨레의 발전을 보장하는 것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필요한 때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글의 세 번째 태어남은 다가오는 새 천년에 한자와의 공존으로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