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의 국어 오용 사례

드라마에서 보이는 부적절한 표현(2)

김희진(金希珍) / 국립국어연구원

지금까지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사극(史劇) ‘ㅇ’의 두 회분을 대상으로 표준어, 표준 발음법, 어휘 선택, 호응 관계 등에서 문제되는 예를 들어 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불필요한 사역형, 어긋나는 언어 예절과 시제 표현, 직역투 등에 관하여 몇 예를 들어 본다.



불필요한 사역형


(1) (왕씨들을) 격리시킬 수밖에요. <제17회분, 정도전이 왕에게>

‘격리하다’는 “따로 옮겨서 떼어놓다”라는 뜻을 지닌 타동사이다. ‘격리하다’로 충분한 것을 ‘시키다’ 형으로 쓰는 것은 사동사의 바른 용법이 아니다. “(왕씨들을) 격리할 수밖에요”로 써야 한다.



어긋난 언어 예절


(2) 한집에서 사는 저도 얼굴 뵙기가 어렵습니다. <제17회분, 정도전 처가 이방원에게>

아내가 남편에 관하여 하는 말치고는 왠지 부자연스럽다. 부부는 상호간에는 존대하면서도, 그 사이는 무촌(無寸)이므로 남(화자와 대등하거나 화자보다 윗사람)에게 말할 때에는 평대(平待)에 가깝게 말하는 것이 우리의 예의다. 더구나 왕족인 이방원에게 남편을 ‘뵙다’라고 한 것은 대우법(待遇法)에 적절치 않은 듯하다. “한집에서 사는 저도 얼굴 보기가 어렵습니다”, 또는 “한집에서 사는 저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로 남편을 한 단계 낮추어야 자연스럽다.



(3) (소리 질러) “마님!” <제18회분, 정도전 집의 하인이 정도전 처에게>

예로부터 소나 개 따위에게나 소리치는 것이지, 멀리 있는 사람을 소리쳐서 부르는 것은 무례하고도 천박한 일로 여겨져 왔다. 화급(火急)할 때 외에는 자신의 윗사람을 그런 식으로 불러서는 안 되니 주의해야 할 일이다.



걸맞지 않은 시제 표시


(4) (덕실이는) 어디 가는 길이더냐? <제18회분, 이방원이 집 떠나는 덕실에게>

이방원이, 하녀(下女) 덕실이가 집을 떠나는 모습을 보고 바로 그 자리에서 한 말이다. 이런 상황에 ‘길이더냐’라는 말은 시제 사용에 무리가 있다. “네가 찾아갔을 때 그가 무어라고 하더냐?”, “어젯밤에 춥더냐”, “네가 만났다는 사람이 과연 영웅이더냐?”와 같이 ‘더’는 과거의 회상을 나타낼 때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어디 가는 길이냐?”로 고쳐야 무리가 없다.



직역투 문체


(5) (왕이 왕사를 우대하는 일은) 조선조 조정에 상당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제17회분, 해설>

영락없는 번역투 문장이다. “(왕이 왕사를 우대하는 일은) 조선조 조정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정도로 고치면 우리말식으로 자연스럽게 된다.



(6) 전하께서 (충분한) 고려가 있으시겠지요. <제18회분, 도당에서>

우리말 식이 아닐뿐더러 주어·술어 호응 관계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은 말이다. “전하께서도 (충분히) 고려하시겠지요”, “전하께서도 깊이 생각하신 끝에 결정하시겠지요” 정도로 다듬어야 할 것이다.
   이 밖에도 왕이나 왕비가 사망하면 ‘기중(忌中)’이라 써서 걸어 놓는다든가, 왕이나 중신(衆臣)들이 ‘수순(手順)’이라는 말을 거침없이 쓰는 일을 지적할 수 있다. 이 말들은 일본어식 한자어(きちゅう, てじゅん)로, 우리가 전통적으로 써 왔던 ‘상중(喪中)’과 ‘순서’·‘차례’라는 말을 도로 찾아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은 흥미진진한 이야기 구성과 박진감 넘치는 연출, 고증에 따른 분장 등 여러모로 공을 들여 시청자들에게 사랑 받았던 사극이다.
   다만, 위에서 몇몇 지적한 바와 같이 언어 사용면에서 좀더 신중을 기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주었다. 단 한마디를 내보내더라도 신중을 기하여 국민에게 전범(典範)을 보여야 할 의무가 방송사에 있다고 본다. 바른 언어 사용을 통하여 국민 정신을 바로 세우는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임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