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국어대사전”의 어문 규범

'내치다'의 사전 처리

 

정희창(鄭熙昌) / 국립국어연구원

'내치다'는 기존 사전에는 올라 있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다. 기존 사전에 있던 말을 올리지 않은 데는 물론,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내치다'는 기존 사전에서 다음과 같이 뜻풀이하고 있다.

(1) 내치다 {동} [주로 '내쳐', '내친'의 꼴로 쓰여] 일을 시작한 기회에 더 잇달아 하다. ¶옆 동네에 간 김에 내쳐 친구네 집에 들렀다./ 내친 김에 밀린 빨래를 다 해 버렸다.

'실제의 말뭉치 자료에서 '내치다'는 '내쳐'와 '내친 김에' 또는 '내친 걸음에'와 같이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존 사전의 뜻풀이에서 '내치다'가 주로 '내쳐'와 '내친'의 꼴로 쓰인다고 한 것도 이러한 사실을 기술한 것이다.
    그런데 '내치다'의 존재 자체를 의심스럽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부사 '내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기존 사전에서는 모두 부사 '내처'와 동사 '내치다'를 함께 올리고 있다. '내처'는 다음과 같이 뜻풀이되어 있다.

(2) 내처 {부} 어떤 일 끝에 더 나아가 ¶가는 김에 내처 집까지 바래다 주었다.

'문제는 부사 '내처'와 '내치다'의 활용형 '내쳐(←내치-+-어)'를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먼저 두 말은 소리로는 구분이 되지 않는다. 모두 [내처]로 소리가 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사 '내쳐'가 서술어로 기능을 하는 경우를 생각하기가 어렵다는 데 문제가 있다. 부사와, 동사와 같은 용언의 가장 큰 차이는 부사는 없어도 문장이 성립하지만 용언은 없으면 문장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3) ㄱ. 꽃이 아주 예쁘다. =>꽃이 예쁘다.
ㄴ. 꽃이 예쁘다. ≠> *꽃이

(3ㄱ)에서 부사 '아주'가 빠져도 문장의 성립에는 이상이 없다. 그렇지만 (3ㄴ)에서 볼 수 있듯이 용언 '예쁘다'가 빠지면 문장이 성립하지 않는다.
    이러한 점은 부사 '미처'와 용언 '미치다'의 활용형 '미친다'와의 비교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4) ㄱ. 나는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 나는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ㄴ. 기온은 빙과류의 판매에 영향을 미친다. ⇒ *기온은 빙과류의 판매에 영향을

(4)에서 알 수 있듯이 부사 '미처'는 문장이 성립하는 데 꼭 있어야 하는 성분이 아니지만 용언인 '미치다'는 문장이 성립하는 데 꼭 있어야 하는 성분이다.

(5) ㄱ. 더운 날씨가 영향을 미쳐 빙과류의 판매가 늘었다.
ㄴ. 나는 내쳐 친구에게 들렀다.

'미치다'의 활용형 '미쳐'가 꼭 있어야 하는 성분이므로 (5ㄱ)은 '더운 날씨가 영향을 미쳤다', '빙과류의 판매가 늘었다'와 같은 두 문장으로 풀어 볼 수 있다. (5ㄴ)의 '내쳐'도 '미쳐'와 같은 용언이라면 '나는 내쳤다'와 '나는 친구에게 들렀다'로 풀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5ㄴ)의 '내쳐'는 부사 '내처'와 다르지 않으며 용언으로서의 용법을 찾기가 어렵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볼 때 '내쳐'는 존재하지 않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내치다'를 올리지 않는 대신 쓰임이 빈번한 '내친김'과 '내친걸음'을 명사로, '내처'와 '내처서'는 부사로 올림으로써 이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