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부호의 이해

쉼표(2)


양명희(梁明姬) / 국립국어연구원

문장 부호 규정의 쉼표 규정 (4)는 다음과 같다.<지난 호에 쉼표 (1)∼(3) 규정은 다루었음.>

(4) 대등하거나 종속적인 절이 이어질 때에 절 사이에 쓴다.
콩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으면 팥 난다.
흰 눈이 내리니, 경치가 더욱 아름답다.

이 규정은 절 사이에 의무적으로 쉼표를 다 써야 한다는 오해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둘 이상의 문장이 연결 어미로 접속될 때 쉼표를 모두 쓰는 것은 문장을 이해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가)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나) 바꾸어 말하면, 아름답고, 곱고, 점잖고, 품위 있고, 우아한 말을 뜻한다.
(다) 적극적이요 능동적인 태도로 일하지 않고, 괴로움을 참아 가며, 다섯 날과 한나절을 억지로 일하고, 주말의 하루와 한나절을 놀이로 즐긴다면, 인생은 전체로 볼 때 괴로움이 즐거움을 압도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가)는 연결 어미 ‘-며, -고, -아’ 뒤에 모두 쉼표를 사용하여 각 절이 어느 부분과 관련되는지 모호하게 되어 좋지 않은 문장이 돼 버렸다. (나) 역시 쉼표를 남용하여 지저분한 느낌마저 준다. (다)도 밑줄 친 부분에만 쉼표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4)의 용례도 문장의 구조를 분명히 보여 주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쉼표를 쓰지 않는 것이 오히려 보기에 좋다. 쉼표의 기능을 더 바르게 설명하려면, (4)의 규정은 ‘문장의 구조를 분명히 보여 줄 필요가 있을 때 절과 절 사이에 쓴다’로 수정하는 것이 좋다.

(5) 부르는 말이나 대답하는 말 뒤에 쓴다.
얘야, 이리 오너라.
예, 지금 가겠습니다.

(6) 제시어 다음에 쓴다.
빵, 빵이 인생의 전부이더냐?
용기, 이것이야말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젊은이의 자산이다

(7) 도치된 문장에 쓴다.
이리 오세요, 어머님.
다시 보자, 한강수야.

(8) 가벼운 감탄을 나타내는 말 뒤에 쓴다.
아, 깜빡 잊었구나.

(5)와 (8)은 하나로 묶어 이해하는 것이 좋다. 부르고 대답하는 말, 가벼운 감탄을 나타내는 말은 따로 규정할 만큼 성격이 다르지 않다. (6)과 (7)의 경우는 쉼표를 꼭 써야 하는 예이다.

(9) 문장 첫머리의 접속이나 연결을 나타내는 말 다음에 쓴다.
첫째, 몸이 튼튼해야 된다.
아무튼, 나는 집에 돌아가야겠다.

   다만, 일반적으로 쓰이는 접속어(그러나, 그러므로, 그리고, 그런데 등) 뒤에는 쓰지 않음을 원칙으로 한다.(용례 생략)

(9)의 두 번째 예는 어색하다. ‘아무튼’ 같은 말 뒤에 쉼표를 쓰면 ‘어쨌든, 뭐래도’ 등등의 연결을 나타내는 부사어 뒤에도 쉼표를 써야 하는데 ‘아무튼’과 같은 말 뒤에 쉼표를 쓰는 것은 문장 이해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 더군다나 ‘다만’의 규정처럼 일반적으로 쓰이는 접속어 뒤에는 쉼표를 쓰지 않도록 되어 있다. ‘다만’ 규정에는 이외에도 ‘또, 즉, 곧, 예컨대, 이를테면’ 등을 추가해 두는 것이 좋다.

(10) 문장 중간에 끼어든 구절 앞뒤에 쓴다.
나는, 솔직히 말하면, 그 말이 별로 탐탁하지 않소.
철수는 미소를 띠고, 속으로는 화가 치밀었지만, 그들을 맞았다.

규정 (10)의 ‘끼어든 구절’은 잘못 끼어들었다는 부정적인 의미 때문에 ‘삽입된 구절’로 표현을 바꾸는 것이 좋겠다. 삽입된 구절 앞뒤에 쉼표를 사용하는 것 역시 문장이 잘못 이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11) 되풀이를 피하기 위하여 한 부분을 줄일 때에 쓴다.
여름에는 바다에서, 겨울에는 산에서 휴가를 즐겼다.

(11)의 용례는 ‘여름은 바다에서 휴가를 즐겼고, 겨울에는 산에서 휴가를 즐겼다’로 풀이될 수 있다. 동일한 성분(휴가를 즐겼다)의 되풀이를 피하기 위하여 이 부분을 생략하고 문장을 접속했는데, 이때도 쉼표를 사용하는 것이 문장의 구조를 더 쉽게 이해하게 해 준다.

(12) 숫자를 나열할 때에 쓴다.
1, 2, 3, 4

(13) 수의 폭이나 개략의 수를 나타낼 때에 쓴다.
5, 6세기     6, 7개

(14) 수의 자릿점을 나타낼 때에 쓴다.
14,314

(12)의 숫자 나열은 규정 (1)의 같은 자격의 말로 해석될 수 있다.<지난 호에서 규정 (12)는 규정 (3)과 합하여 규정해야 한다고 설명하였음.> 규정 (13)의 ‘수의 폭’은 어떤 의미인지 용례를 봐도 분명하지 않다. 규정 (14)의 수의 자릿점은 일반적으로 천 단위로 찍는 쉼표를 말하는데, 수의 자릿점을 나타낼 필요가 없으면 쓰지 않아도 좋다는 허용 규정을 두는 것이 좋다. 또한 연도, 번지, 전화 번호, 주민등록번호, 쪽수 등은 천 단위가 넘더라도 쉼표를 쓰지 않음을 원칙으로 한다는 ‘붙임’ 규정이 필요하다. 규정 (14)의 쉼표는 다른 쉼표와 달리 쉼표 다음에 한 칸을 띄어 쓰지 않는 것이 보통이므로 이를 명시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