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특집

2000년의 한글날에


심재기(沈在箕) / 국립국어연구원장

또다시 한글날이 다가온다. 그 날이 한글 창제 반포일이 아니라, “해례본 훈민정음(解例本 訓民正音)”의 완성일이지만 그 날로 한글날을 삼은 것은 여간 잘된 일이 아니다. 1년 중에 그 무렵처럼 청량(淸凉)하고 기분 좋은 날씨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을이 시작된다고 하는 추분(秋分)을 넘기고 또 보름을 지내면 아침저녁 찬 이슬이 내린다는 한로(寒露) 철이 찾아온다. 이때가 바로 한글날과 엇비슷이 맞아떨어진다.
   저만치 물러간 더위와 성큼 다가온 짙푸른 하늘, 아침저녁으로 한기(寒氣)조차 느껴지는 삽상(颯爽)한 공기, 이러한 때에 한글날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무렵이면 다시 한번 한글을 우리의 고유 문자로 가졌다는 사실에 새삼스러운 놀라움과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 가을에 한글 문자의 우수성과 편의성을 되새긴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그러나 우리가 한글을 첫손에 꼽는 문화 유산으로 가졌다는 것과 그 사실에 자긍심을 느끼고 즐거워한다는 것들이 앞으로도 우리가 여전히 자랑스런 문화 민족으로 발전하고 번영한다는 것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옛날 고향 집에 금송아지가 있었다 하여 지금도 풍요를 누리는 부자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한글날만 다가오면 옛날 고향 집의 금송아지를 자랑하듯 그 표음 문자의 간결성과 체계성에 탄복하며 세종 대왕을 칭송하고 우리가 문화 민족이라고 자랑한다. 그러나 한글날은 한글 자체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날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미래의 문화 민족으로 번영하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논의하며 우리의 자세를 가다듬는 날이 되어야 한다.
   한글의 우수성은 다가오는 미래에 한글만으로 문자 생활을 영위해도 좋다는 것을 보장하는가? 한자(漢字)와의 병용 정책이 정부의 방침이라고는 하지만 이 병용 정책은 정말로 문자 생활의 효율성을 보장하고 있는가? 또 문자 생활과 표리(表裏) 관계에 있는 언어 생활은 어떻게 정리하여야 할 것인가? 이처럼 언어·문자 생활 전반에 걸친 문제에 정성스런 대답을 준비하는 날이 아니라면 한글날은 없어도 좋은 날일 수도 있다.
   요즈음 북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잦아졌다. 그때마다 북한 사람들은 남한의 외래어 남용 문제를 꼬집는다. 얼마 전 북한의 국어학자 유열 씨도 남한의 가족을 만나러 왔을 때 역시 남한의 지나친 외래어 사용 실태를 지적하였다. 남한의 외래어 사용은 그분들의 눈으로 보면 대단히 개탄(慨嘆)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때에 한글날이 찬 이슬이 내리는 가을철에 자리잡고 있음을 되새겨 보게 된다. 냉철하고도 이지적인 안목으로 우리의 언어·문자 현실을 생각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명히 외국 낱말이라고 불러도 좋을 외래어를 지나치게 쓰고 있다. 불가피하게 써야 할 말이 아닌데도 깊이 생각지 않고 함부로 쓰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영어나 그 외의 외국어가 우리에게 친숙해진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말 사랑에 대한 투철한 의식이 모자라는 면도 있는 듯하다. 이러한 때에 한글날이 찬 이슬 내리는 가을철에 자리잡고 있음을 되새겨 보게 되는 것이다. 이 삽상한 날씨는 우리가 모든 일에 치우치지 않고 중용(中庸)의 도리를 지키도록 일깨운다.
   이 날씨는 한자(漢字)를 가르치고 사용해야 한다면 그것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은지, 외래어를 사용해야 한다면 어떤 경우에 허용되는 것이며 그것에 대응하는 우리말은 어떻게 만들어내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금년의 한글날은 한 열흘쯤 연이어 계속됐으면 좋겠다. 그러면 언어·문자 생활에 대한 온 민족의 슬기가 한 곬으로 영글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