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자 표기법의 이해

자음의 특징(1)


김세중(金世中) / 국립국어연구원

지난 7월 7일 고시된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은 자음 표기가 종전의 로마자 표기법과 두드러지게 달라졌다. 국어의 파열음은 예사소리, 거센소리, 된소리의 세 계열이 있는데 종전의 로마자 표기법에서는 예사소리, 거센소리, 된소리를 모두 같은 글자로 적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즉 ‘가, 카, 까’를 ka, k’a, kka, ‘다, 타, 따’를 ta, t’a, tta, ‘바, 파, 빠’를 pa, p’a, ppa, ‘자, 차, 짜’를 cha, ch’a, tcha로 적었던 것이다.

그런데 ‘ㅋ, ㅌ, ㅍ, ㅊ’에 쓰도록 된 어깻점(’)은 생략되기 일쑤였다. 국내외의 영어 신문에서는 어깻점을 생략하였다. 특히 개인이 정해 오다시피 한 인명 표기에서는 어깻점을 사용하는 사람은 전무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로 표지판과 지하철의 안내 지도 등에 어깻점이 쓰일 뿐이었다. 특히 인터넷의 도메인 이름에는 어깻점을 아예 사용할 수 없었다. 어깻점을 사용하지 않는 한 국어의 예사소리와 거센소리는 똑같이 표기된다. ‘ㄱ, ㄷ, ㅂ, ㅈ’과 ‘ㅋ, ㅌ, ㅍ, ㅊ’이 같아지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로마자 표기는 국어의 구별을 로마자로도 구별해야 한다고 볼 때 종전의 로마자 표기법은 근본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ㄱ, ㄷ, ㅂ, ㅈ’을 ‘ㅋ, ㅌ, ㅍ, ㅊ’과 구별하기 위해서는 종전에 k, t, p, ch로 적던 어두의 ‘ㄱ, ㄷ, ㅂ, ㅈ’을 g, d, b, j로 표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ㄱ, ㄷ, ㅂ, ㅈ’으로 시작되는 지명은 이번 로마자 표기법 개정에 따라 표기가 달라지게 되었다. 우리 나라의 주요 도시인 ‘부산, 대구, 광주, 제주’가 Pusan, Taegu, Kwangju, Cheju에서 Busan, Daegu, Gwangju, Jeju로 바뀌었다.

일부에서는 종전의 Pusan, Cheju 표기가 외국에 더 잘 알려져 있음을 들어 Pusan, Cheju 표기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하기도 한다. Busan, Jeju가 되면 외국인들이 혼란을 겪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물론 있을 수 있는 걱정이다. 그러나 ‘부산, 제주’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Pusan, Cheju를 인정할 경우 ‘부산’은 Pusan, ‘부여’, ‘불국사’는 Buyeo, Bulguksa가 되고 ‘제주’는 Cheju, ‘전주’, ‘진주’는 Jeonju, Jinju가 되어 더 큰 혼란을 유발할 것이다. 예외는 될 수 있는 한 없는 것이 좋다.

‘ㄱ, ㄷ, ㅂ, ㅈ’과 ‘ㅋ, ㅌ, ㅍ, ㅊ’은 로마자 표기에서도 마땅히 구별해야 한다. ‘ㄱ, ㄷ, ㅂ, ㅈ’과 ‘ㅋ, ㅌ, ㅍ, ㅊ’을 구별하는 방법은 ‘ㄱ, ㄷ, ㅂ, ㅈ’을 g, d, b, j로, ‘ㅋ, ㅌ, ㅍ, ㅊ’을 k, t, p, ch로 표기하는 것이다. ‘ㄱ, ㄷ, ㅂ, ㅈ’을 k, t, p, ch로 하면서 ‘ㅋ, ㅌ, ㅍ, ㅊ’과 구별하는 방법이란 사실상 없다. ‘ㄱ, ㄷ, ㅂ, ㅈ’을 k, t, p, ch로 계속 쓰자는 것은 ‘ㄱ, ㄷ, ㅂ, ㅈ’과 ‘ㅋ, ㅌ, ㅍ, ㅊ’의 구별을 하지 말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동안 써 오던 각 지명의 로마자 표기를 새 표기법에 따라 바꾸는 것은 귀찮고 번거로울 수 있다. 그러나 그 번거로움 때문에 국어의 소중한 구별을 포기할 수는 없다. 로마자 표기법의 개정은 그동안 무시되었던 국어의 구별을 되찾았다는 데 뜻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