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화어의 이해

‘통장을 부르다’


전수태(田秀泰) / 국립국어연구원

지난 번 8·15 때의 이산 가족 상봉 이후 두 번째로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이산 가족 상봉이 이루어지리라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만남이야말로 언어의 차이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이번 호에도 우리에게 낯선 북한 말을 소개하기로 한다.

‘갈람하다’는 ‘갸름하고 호리호리하다’의 뜻이다. “‘선생님, 미안해요’ 약간 처진 어깨우에 놓여져있는 숙미의 쑥 빠진 목은 갈람한 그의 육체미와 어울려보였다. 삼십이 넘도록 아이낳이를 못한 그는 첫눈에 몹시 허약해보였으나 어딘지 모르게 숨어있는 강기를 느낄수 있었다.”<“붉은 지평선”, 리병수, 문예출판사, 1981, 274쪽>와 같이 쓰이는 말이다.

‘말째다’는 ‘거북하고 불편하다’ 또는 ‘사람이나 일이 다루기에 불편하다’의 뜻이다. “신종섭은 속으로만 이런 생각을 하며 일어나 앉으려고 상반신을 일으켰다. 부지중 이마살을 찌프리며 가벼운 비명을 질렀다. 상기도 다리가 여간 말째지 않은 것이다. 그만하면 리바놀 같은 약은 그립지 않게 쓴 폭인데 상처는 도시 아물줄을 모른다. 송치환이 가져다주는 약에는 못쓸것이 들어있는가. 하긴 그놈이 가져다주는 미국제약을 쓰기란 죽기보다 싫었다. 그놈이 ‘친절’을 베푸는것부터가 께름하고 구역질이 났다.”<“적후의 별들”, 김형지, 문예출판사, 1983, 207쪽>처럼 쓰이고 있다.

‘시끄럽다’는 ‘성가시도록 말썽이나 가탈이 많다’의 뜻이다. “가만 내버려두면 아낙네는 종일이라도 이야기를 계속할것 같았다. 해가늠을 해보니 이제 10리나마 되는 명주촌에 들렸다가 돌재로 돌아가자면 날이 저물어 두만강나루를 건너기 시끄러울것 같았다. 오석하는 적당한 기회에 아낙네와 작별하고 걸음을 다우쳐 단숨에 명주촌에 들이댔다.”<“대지는 푸르다”, 4·15 문학창작단, 문예출판사, 1981, 287쪽>와 같은 예를 들 수 있다.

‘재구를 치다’는 ‘잘못을 저지르거나 탈을 내다’의 의미로 쓰인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이윽히 박경학의 얼굴을 들여다보시였다. 그는 주관적으로는 무엇인가 잘해보자고 애쓰고 열성도 있는데 무엇때문에 자꾸만 재구를 치는가. 그러고 볼 때 혁명가의 주관적열성이나 의도 같은것이 실천에서는 옳고 그른 평가의 기준으로 될수 없다는것이 명백하지 않은가.”<“대지는 푸르다”, 4·15문학창작단, 문예출판사, 1981, 589쪽>와 같이 쓰이고 있다.

‘통장을 부르다’는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수 없는 성과를 이룩하고 그것을 보란듯이 큰소리로 공포하는것’을 이르는 말이다. “놀라운 일이로다. 마지막 싸움이 될 이번 울돌목해전은 벌써 통장을 부른셈이나 다름없도다. 백성들이 이처럼 돕고 있으니 싸움하기전에 승패는 이미 정해졌노라…”<“리순신 장군”, 김현구, 문예출판사, 1990, 506쪽>와 같은 예를 들 수 있다.
   지난 6월의 남북 정상 회담을 계기로 통일을 향한 여러 가지 활동이 ‘재구를 치는’ 일 없이 잘 진행되어 마침내 통일의 길에 이르러 ‘통장을 부르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