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자 표기법의 이해

모음 표기의 특징


김세중(金世中) / 국립국어연구원

새 로마자 표기법에서 ‘어’는 eo로 적는다는 것을 이미 말한 바 있다. 컴퓨터 자판에 없어서 사실상 사용하기가 불가능했던 ŏ에 비하면 eo로 적음으로 해서 한결 나아졌지만 여전히 실행하는 데는 문제가 남아 있다.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도 사용자가 따라 줄 때 의미가 있는 것인데 오늘날 일반 언중은 대부분 ‘어’를 u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에서 sun, cut, nut, fun, luck 등을 보면 한결같이 [Λ] 발음이고 [Λ]는 우리 귀에는 ‘어’로 들리기 때문에 ‘어’는 u로 적어야 외국인이 ‘어’로 읽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듯하다. 그래서 ‘삼성’, ‘현대’ 같은 우리 기업도 회사 이름을 Samsung, Hyundai로 적고 있는데, 이런 대기업의 표기도 우리 국민들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어’를 u로 적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외국인이 u를 반드시 ‘어’로 읽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영어권 외의 외국인들은 거의 무조건 u는 ‘우’로 읽는다. 영어권 사람들 중에도 u를 ‘어’로 읽는 사람도 있고 ‘어’로 읽지 않는 사람도 있다. 결국 ‘어’를 u로 적으면 영어권의 일부 사람들만이 ‘어’로 읽어 준다는 장점만 있는 셈인데 그래서 ‘어’를 u로 적는다고 할 때 ‘우’는 어떻게 적을 것인가? ‘어’를 u로 적는 이상 ‘우’는 u로 적을 수 없다. ‘어’를 u로 적고자 하는 사람은 의당 ‘우’는 oo로 적고자 할 것이다. 예컨대 ‘춘천’은 Choonchun이 되겠다. 그러나 ‘어’를 u, ‘우’를 oo로 하면 매우 우스운 예가 다수 발생한다. ‘구운몽’은 Goooonmong이 되어 도저히 어떻게 읽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그뿐이 아니다. ‘어’로 끝나는 단어의 u는 ‘어’로 읽히지 않는 문제가 생긴다. 예컨대 ‘수서’를 Soosu로 적을 때 ‘수서’ 비슷하게 발음할 가능성은 없다. 영어에는 모음 u로 끝나는 단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영어 철자 중심으로 로마자 표기법을 만드는 것은 위와 같은 문제를 낳기 때문에 채택할 수가 없다. Samsung을 ‘삼성’으로 읽어 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삼숭’으로 읽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u는 ‘우’를 적는 데 쓰는 것이 좋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래서 새 표기법에서는 ‘우’를 u로 쓴다. u는 비영어권에서는 반드시 ‘우’로 읽고, 영어권 사람들도 외국의 고유 명사 표기의 u는 ‘우’로 읽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에 대해서도 조심해야 할 게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기 이름의 ‘이’를 ee로 적는다. 영어에서 bee, see, need 등의 발음이 ‘이’로 나니까 ‘이’는 ee로 적어야 하는 줄 안다. 그러나 ee를 ‘이’로 발음하는 것은 영어만의 특징이다. 영어 외의 세계 대부분 언어에서는 i가 ‘이’로 발음된다. 로마자 표기는 세계 언어의 보편성을 따라야지 영어라는 특정 언어에 매여서는 안 된다. 로마자 표기가 곧 영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로마자 표기는 영어권 사람들만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고 전 세계인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