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가하다'는 만능인가
김희진 / 국립국어연구원
'증가하다'가 아주 많이 쓰인다. '증가(增加)하다'의 뜻이 "양이나 수치가 늘어나다, 또는 늘어나게 하다"이니 인구나 수출, 또는 소득이 증가한다는 말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건강 관련 서적에 나타난 다음의 예에서 쓰인 '증가하다'는 다른 말로 바뀌어야 하지 않나 싶다.
범위는 테두리가 정하여진 구역이자 어떤 것이 미치는 한계다. '광범위(廣範圍)'란 말이 있듯이 구역이나 한계는 넓고 좁음의 문제이므로 (1)에는 '넓히려면'이 어울린다.
(2ㄱ) '강도(强度)-고강도(高强度) 훈련', (2ㄴ) '농도(濃度)-고농도(高濃度) 용액', (2ㄷ) '비율(比率)-높은 비율-고율(高率) 관세', (2ㄹ) '점수-높은 점수-고득점 학생', (2ㅁ) '빈도(頻度)-고빈도(高頻度) 단어', (2ㅂ) '만족도-높은 주민 만족도'로 짝을 각각 지어 보면 (2ㄱ)~(2ㅂ)은 증감(增減)이 아닌 '고저(高低)'의 개념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2ㄱ)~(2ㄹ)은 '높아졌다'․'상승하였다', (2ㅁ)은 '높아지는'․'상승하는', (2ㅂ)은 '높아지도록'․'상승하도록'으로 바뀌어야 상황에 맞게 된다.
(3ㄱ)의 '거리'는 공간으로 (3ㄴ) '기간'은 시간으로 둘 다 길이로써 말한다. 따라서 (3ㄱ)은 '연장되었다'로, (3ㄴ)은 '연장하여'이다. 서울에 1호선부터 7호선에 이르기까지 지하철을 신설하거나 연장하는 공사를 해 온 사실, 관객의 호응도가 예상 외로 높을 때 연극․영화의 흥행 기간을 예정보다 더 연장하는 예를 상기해 볼 수 있다.
이 밖에 '증가하다'는 다음의 경우에도 쓰인다.
(4)는 생화학계에 적응하도록 힘을 실어 주는 것이니 '돕는다' 또는 '촉진한다'이다.
(5)는 가족 간에 몇 번이나 의사소통하는가를 헤아리는 횟수가 아니라 가족 각자가 품은 생각이나 뜻을 얼마나 원만하고 거침없이 서로 잘 통하게 하느냐의 일이므로 '원활하게 한다'이다.
(6)은 효율적인 프로그램을 통하여 심폐 기능을 좋게 하는 것이므로 '개선하는'이나 '향상시키는'이 적절하다.
(7)은 방법이 여러 가지라는 뜻이니 결과적으로 '다양화되고'가 알맞다.
(8)의 기술은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발달하여' 가는 것이다.
(9ㄱ)의 우울증이나 (9ㄴ)의 아픔은 그 가짓수가 늘어나는 게 아니고 그 정도가 심화됨을 말하므로 (9ㄱ)은 '키운다', '심화한다'이고, (9ㄴ)은 '커진다', '심해진다'이다.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다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란 말이 있다. 그러나 이 '증가하다'란 말도 알맞은 자리에 써야지 그렇지 않으면 말하는 이의 의도와는 저만큼 비껴갈 뿐 얻는 것이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