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시가의 감상]

고려 가요 "동동(動動)"의 '정월요(正月搖)'

김옥순 / 국립국어연구원

德으란 곰에 받고 福으란 림에 받고
德이여 福이라 호 나라 오소다
아으 動動다리

正月ㅅ 나릿 므른 아으 어져 녹져 논
누릿 가온 나곤 몸하 올로 녈셔
아으 動動다리
<'서사(序詞)와 정월요(正月搖)', "動動">

고려 가요 '동동(動動)'은 그달 그달의 자연 풍물과 세시풍속을 노래한 최초의 달거리체 노래로서 여기서는 서사와 정월요만을 간단히 살펴보겠다. 송도지사(頌禱之詞)로 시작하는 '서사'는 "한 해의 덕은 뒤(곰)로 받고 한 해의 복은 앞(림)에 받아 새해에는 덕과 복을 많이 받기를 기원하는" 노래이다. '정월요'는 "正月ㅅ 나릿(내[川]+ㅅ) 믈+은/ 얼[凍]+져 녹+져 논/ 누리(세상[世]+ㅅ) 가온 나[出]+곤 몸[身]하 올로[獨] 녀[生]ㄹ+셔/ 아으 동동다리"로 뜻과 형태를 대략 분석할 수 있다.
    한 해의 시작인 정월은 얼었던 강물이 풀리기 시작하는 때이다. 태초에 먼저 물이 있었고 그 물에서 인간계며 자연계가 형성되었다는 신화적 우주론으로 볼 때 '정월요'에 나타나는 물은 세계 창조의 원천이 되는 이미지를 띤다. 즉 물에서 세계가 만들어졌다는 신화를 생각해 볼 때 동동의 '정월요'가 한 해를 펼쳐 나갈 생명의 원천으로 냇물(강물)을 노래한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다.
    '정월요'의 서술 구조가 한시(漢詩)의 특징인 선경후정(先景後情)의 2행 병렬 방식으로 전개되면서 1행에서는 정월의 강물이 얼었다가 녹았다가 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2행에서는 고독하게 사는 시적 화자 자신의 심경을 노래하면서 강물의 변화와 사람 사이의 애정의 갈등을 부정적인 병치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같은 강물이지만 낮에는 햇볕에 녹았다가 밤에는 온도가 낮아져서 얼기를 반복하는 정월 냇물의 서걱거리는 모습에서 연인의 정다운 모습을 연상한다는 것은 현대적이고도 신선한 발상법이다. 여기서의 강물 이미지는 일반적인 강물이 아닌 정월의 독특한 강물임을 주목하게 된다. 정월의 강물에 비유된 남녀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유추할 수 있다.

A 정월의 강물 낮에는 햇볕에 ------------- 사이 좋을 때는 남녀 관계 B
녹았다가 ------- 남녀가 잘 어울려 지내다가
밤에는 -------------------- 사이 나쁠 때는
얼어붙는 ------------------- 싸늘하게 굳는
서걱거리는 -------------------- 변덕스러운
강물 --------------------------- 남녀 관계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변덕스러운 강물과 토닥거리는 남녀 사이의 비유적 병렬을 함축하면서 동시에 시적 화자의 시선은 단순한 서술자의 시선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적 화자는 강물과 연인의 함수 관계를 읽어 낼 수 있으며 자신을 제3자의 시선으로 그들과 비교 관찰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한 상태이다. 고려 가요 '동동'에는 이렇게 성에 눈 뜨기 시작하는 여인의 진솔한 마음이 매 달마다 그대로 표현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2행 "누릿 가온 나곤 몸하 올로 녈셔"(세상 가운데 나곤 홀로 지내는구나)에서 화자 자신은 풀리는 강물의 징조에 함께 동참하지 못하여 섭섭한 상태다. '누리'에 태어나서 자연의 순리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을 괴로워하고 있는 화자는 자연물과 자신 사이에 어떤 거리가 있음을 보여 준다. 이 거리 의식은 자신의 고독을 호소하는 부정적인 시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연계의 무차별적 순환에서 다소 삐딱하게 벗어나는 문화적 미의식이 만들어 내는 미적 거리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자연 질서에 단순히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미적 거리를 통해 자연물과 자신의 차이를 인식하고 그 관계를 노래할 때 새로운 미의식이 발생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