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사람들 사이에서
험난하게 부대끼면서 살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났다.
어두운 밤하늘
부산하게 반짝이는 별빛같이
흩어져 있지만
견고한 짜임과 결속으로
이 땅의 사람들이 이루어낸 위대한
생명의 창조물이다.
때로는 질곡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을 고뇌하다가
때로는 유성처럼 별들의 길목을 지키는
파수꾼이기도 하다.
숱한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그 어떤 위대한 창조도
찬란한 지식도
언어라는 기나긴 숲을 지나지 않고는
무위일 뿐이다.
이 땅에 한국어라는 기호의
논밭을 가는
고적한 마을이 있다.
한국어의 창고지기 국립국어원
20년 세월을 헤쳐 와
가파르고 험난했던 벼랑,
더 깊은 낭떠러지 앞에 서라.
새로운 시작이다!
무겁게 닫힌 사람들의 가슴을
유난히 밝게 열어라.
그렇게 하여 다시 태어나라.
그렇게 하여 여울의 긴 둑을
더 단단히 쌓아 가라.
우리말과 글,
존재의 유일한 등불이자 별빛.
그대들이 어둠 속에서
명멸하는 별빛을
영원히 지켜 주리라.
축시
한국어라는 별빛
이상규 / 제7대 국립국어원장,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