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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20년사

성과

국어사전 편찬표준국어대사전 편찬

1991년 2월, 남북의 평화적 통일과 민족의 발전을 위한 각 분야별 교류와 협력 사업 추진 내용을 담은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1991. 2. 13.)가 채택되었다. 이와 같이 남북 간의 문화 교류에 대한 호의적인 분위기가 조성됨에 따라 민족 문화 공동 위원회를 주축으로 한 남북한 문화 교류는 진전의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1991년 12월 14일, 남한과 북한은 문화 일반, 예술, 어문 출판, 생활 문화, 전통문화, 종교 등 6개 분과별로 남북 쌍방이 문화 예술계 인사 각 1백 명씩이 참여하여 남북 문화 교류를 추진할 것을 골자로 하는 “남북 문화 교류 지침”을 마련하였다. 이에 따라 문화부는 언어 분야의 이질감 해소를 위해 통일에 대비한 “종합국어대사전”을 편찬하기로 하고, 10년에 걸쳐 1만여 쪽 분량의 통일 대사전을 펴낼 계획을 발표했다. 1991년 3월 이어령 문화부 장관이 2001년 발간을 목표로 하는 “종합국어대사전”(가칭) 편찬 발간 사업을 1992년도 국립국어연구원의 주요 신규 사업으로 확정한 데에는 이러한 국내외의 정세 변화가 반영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 “종합국어대사전”은 남북한에서 쓰이고 있는 낱말의 어원, 출전, 용례, 의미 변천까지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문화적 대사업으로 추진되었다. 112억의 예산, 200여 명에 달하는 박사 과정 수료 이상의 전문 인력이 동원된 “종합국어대사전” 편찬 사업의 주안점은 ‘상업 출판사에서는 수행하기 어려운 규모의 예산과 광범위한 정예 인력을 동원하여 현재 우리의 국어학 수준과 어문 규범에 걸맞은 사전을 만드는 것’이었다.
편찬 과정은 준비, 집필, 교열 및 교정, 그리고 발간의 네 단계로 진행되었다. 준비 단계인 1992년부터 1993년에는 기존 사전을 비롯한 연구 성과를 검토함으로써 사전 편찬 방침을 확정했다. 1992년 3월 사전 편찬실을 설치하여 모든 연구원들이 표제어, 뜻풀이, 용례, 전문어, 어휘 수집 등의 업무를 분담했으며, 4월에 열린 제1회 사전편찬추진위원회를 시작으로 고어, 방언, 뜻풀이, 용례, 전문어, 어휘 조사 수집, 표제어, 북한어, 해외 동포 언어 등과 관련한 분과 회의를 연 2~3회 개최하였다. 또한 1992년 12월에는 “국어사전에서의 파생어 처리에 관한 연구”, “국어사전 편찬을 위한 대상 자료 및 어휘 수집에 관한 연구”, “문자열 검색⋅사전 검색 프로그램의 연구와 개발” 등 사전 편찬 지침 마련을 위한 결과 보고서가 작성되었다.
1993년 5월에는 종합국어대사전 편찬 계획이 수정되어 기존의 일정을 단축하여 1997년에 발간하는 5개년 계획으로 조정되었다. 또한 같은 해 12월에는 “국어사전에서의 합성어 처리에 관한 연구”, “국어 어휘의 분류 목록에 대한 연구”, “15세기 한자어 조사 연구” 등의 연구 보고서가 발간되었고, 사전 편찬 지원 시스템 개발 사업이 1994년 12월까지 진행되었다.
사전의 완간 시기가 4년 앞당겨짐에 따라 1994년부터는 사전 편찬 작업이 본격적으로 활기를 띠게 되었다. 집필 단계인 1994년과 1995년에는 사전 편찬의 첫 단계인 표제어 선정 작업을 완료되었으며 이어서 일반어, 전문어, 북한어, 방언, 옛말, 미등재어, 문법 형태 등의 집필이 시작되었다. 사전 편찬에 활용할 대규모 말뭉치 구축을 위한 용례 자료 입력 작업도 1994년에 착수하여 1996년까지 진행하였다. 1995년 1월에는 민간 출판사와의 “종합국어대사전” 출판 계약을 위해 대한출판문화협회에 추천을 의뢰했으며, 그 결과 1996년 9월, ‘두산동아’와 출판 계약을 체결하였다. 1995년 12월에는 사전 명칭을 “표준국어대사전”으로 변경하고 사전 편찬 계획을 수정하였으며 발간 시기 또한 1997년에서 1999년으로 조정하였다.
1996년에는 교열 단계에 접어들어 1998년까지 두 차례에 걸친 교열 작업을 진행하였다. 교열 작업은 각 분야별로 집필이 완료된 원고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분리 교열과, 그것이 끝난 원고를 모두 합쳐 가나다순으로 정리한 원고를 대상으로 하는 통합 교열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교열 작업이 완료되자, 1998년 7월부터는 원고 교정 작업을 진행하여 1999년 6월에 9차례에 걸친 교정 작업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또한, 같은 시기 “사전 원고 변환 프로그램의 연구와 개발”, “문자열 검색⋅사전 검색 프로그램의 연구와 개발” 등의 사업 결과 보고서 발간이 이루어졌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규모뿐 아니라 사전학적으로도 이전의 사전과 차별화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이 ‘주표제어’를 먼저 제시하고 ‘부표제어’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단어 간의 연계성을 파악하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발전1(發展)[-쩐][명] ①더 낫고 좋은 상태나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감. ¶경제 발전이 국민 의식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②일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됨. ¶이야기가 이제 발전 단계로 접어들었다.
발전-하다1[-쩐--][명] ①⇒발전1①. ¶기차가 개통된 뒤로부터는 읍내가 대체로 발전하는 반면에 달내 장터는 차차 쇠잔해 들어 갔다.≪이기영, 신개지≫ ②【…으로】⇒발전1②. ¶버릇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차 괴상한 휴식의 방법으로 발전하여 결국에는 주인공을 죽음으로까지 이르게 한다.
≪이청준, 소문의 벽≫

또한 규범 정보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주표제어를 보면 한글 맞춤법, 띄어쓰기, 표준어, 형태 정보 등이 들어 있다. 주표제어에 아무 기호가 없거나 붙임표만 쓴 경우는 한 단어이므로 띄어 쓰지 않지만 ‘^’을 쓴 것은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되 붙일 수 있음을 나타내고 가운뎃점을 쓴 것은 언제나 가운뎃점을 넣어서 표기하라는 뜻이다.

[표 3-1] 주표제어의 다양한 형태
[표 3-1] 주표제어의 다양한 형태
표제어 형태 설명
어머니, 학교, 밥공장 아무 기호 없이 붙여 쓴 경우
자존-심, 가로막-히다 표제어 가운데 붙임표를 쓴 경우
-었-, 햇-, -뱅이 표제어 앞뒤에 붙임표를 쓴 경우
금동^미륵보살^반가상 붙여 쓰기 허용 기호만 쓴 경우
앵글로ㆍ색슨 가운뎃점만 쓴 경우
과학의 날 아무 기호 없이 띄어 쓴 경우
리가ㆍ페레-병 붙임표와 가운뎃점을 함께 쓴 경우
우랄ㆍ알타이^어족 가운뎃점과 붙여 쓰기 허용 기호를 함께 쓴 경우
망이ㆍ망소이의 난 가운뎃점을 쓰면서 띄어 쓴 경우
거주^이전의 자유 붙여 쓰기 허용 기호를 쓰면서 띄어 쓴 경우

규범 정보는 뜻풀이를 통해서도 보여 주는데 비표준어인 경우에는 ‘○○의 잘못’과 같이 뜻풀이하여 규범 정보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알아맞추다[동] ‘알아맞히다’의 잘못.

1999년 한글날인 10월 9일에 “표준국어대사전” 상권 발간 출판기념회가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렸다. 당시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은 발간사를 통해 “이 사전은 정부에서 직접 편찬한 사전인 만큼 다른 사전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라며 발간의 의의를 밝혔다. 심재기 국립국어연구원장은 “수정 작업과는 별도로 민간에서 사전 편찬이 활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사전 편찬 여건을 개선하는 데도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국어사전 편찬 기반 조성에 힘쓸 것을 다짐하였다.

1999년 '표준국어대사전' 출판 기념식
[그림 3-1] 1999년 “표준국어대사전” 출판 기념식

이어 같은 해 11월 30일, 중권과 하권이 발간됨으로써 “표준국어대사전”이 완간되었다.
이렇게 발간된 “표준국어대사전”에는 1999년 8월까지의 최신 정보와 학계의 연구 성과가 망라되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상, 중, 하’ 세 권이 한 질로 되어 있으며 총 7,328면에 표준어를 비롯하여 북한어, 방언, 옛말 등 50여 만 단어가 수록되어 있다.(일반어 25만 단어, 북한어 7만 단어, 전문어 19만 단어, 방언⋅옛말 3만 단어) 또한 1만여 점의 천연색 삽화와, 용언 활용표, 외래어 표기 용례, 학명 목록 등의 부록이 포함되어 있다. 일반 원칙만을 정하고 있는 현행 어문규정을 구체화하고 북한어를 대폭 수용하였으며 예문을 풍부하게 제시함으로써 단어의 용례를 명확하게 보여준 점은 “표준국어대사전”의 편찬 의도가 잘 반영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표준국어대사전”은 그 내용 자체뿐만 아니라 사전 편찬사적으로도 획기적인 시도를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민간 출판사나 사립대학 연구소가 아닌 국가 기관에 의해 진행된 작업인 만큼 발간 관련 자료들이 다양한 형태로 일반에 공개되었다. 2000년 8월에 “표준국어대사전 편찬 백서”와 “표준국어대사전 편찬 지침”을 발간, 관련 파일을 누리집에 공개한 것이 그 예이다. 사전 편찬 과정에서 축적된 지식과 기술을 공유하여 사전학의 발전을 도모하고 이후의 사전 편찬에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 공개되었다.
또한 “표준국어대사전”은 사전의 전자화를 시도함으로써 일반인의 접근성을 높였다는 점에서도 특기할 만하다. 2001년도에 종이 사전 형태로 발간한 “표준국어대사전”의 오류를 바로잡음과 동시에, 이를 시디(CD), ‘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전자사전, 대형 포털 사이트의 온라인 사전 등 다양한 형태를 통해 일반에게 보급한 것은 기존의 다른 사전들과 차별화되는 점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표준국어대사전(1999년)
[그림 3-2] 표준국어대사전(199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