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원의 창립 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엊그제 일 같은데 벌써 20년이 되었다니, 새삼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국립국어원의 창립은 광복 이후의 우리 학계의 숙원이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이 창립은 이어령 장관의 작품이었습니다. 문화부가 신설되고 어문 정책이 문교부에서 문화부로 이관되었을 때 마침 이어령 장관이 취임함으로써 국립국어연구원의 창립이 실현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국립국어연구원이 문을 연 초기에 저는 염려가 많았습니다. 정해진 청사가 없어 이리저리 이삿짐을 들고 옮겨다닐 때에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연구 기관의 특성을 살리는 정책이 바람직한데도 여느 행정 기관과 같이 운영되는 것을 볼 때에는 답답한 마음을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며 연구원 본래의 업무를 훌륭히 수행해 온 데는 역대 원장의 노고가 참으로 컸습니다. 오늘날 연구원이 지니고 있는 높은 위상은 안병희 초대 원장을 비롯한 역대 원장들의 엄청난 노고가 빚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국립국어원은 참으로 많은 일을 했습니다. 처음 창립했을 때에는 아무도 이렇게 많은 일을 하리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표준국어대사전”(1999년)을 7년 만에 완간했음을 들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한 여러 연구원들의 노력이 얼마나 컸던가는 얼핏 짐작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이 사전은 지금까지 간행된 가장 좋은 국어사전입니다. 그러나 ‘대사전’이라는 표제는 붙였으나 중사전입니다. 완전한 국어사전과는 거리가 멉니다. (실상을 말하면 완전한 사전이란 없습니다. 완전에 가까운 사전이 있을 뿐입니다.) 이런 사전은 5개년, 10개년 계획으로는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문자 그대로 백년대계가 필요합니다. 앞으로 할 수정 증보를 위해서는 우리나라에서 모을 수 있는 가장 유능한 인재들을 모아야 합니다. 지금 구할 수 없으면 새로 양성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완전에 가까운 국어사전이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우리 민족 문화의 한 큰 금자탑이 될 것입니다.
국립국어원은 어문 정책을 세우고 온 국민의 국어 생활을 바른 길로 이끄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실제적인 일도 현대 국어의 체계와 유구한 국어의 역사에 대한 깊은 연구의 밑받침이 있을 때 비로소 올바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어느 모로 보나 저는 창립 당시의 ‘국립국어연구원’이 합당한 명칭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구’가 없는 명칭은 고갱이가 빠져 버린 듯한 느낌을 줍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일을 했지만, 크게 보면, 준비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일을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나아갈 때 더욱 영광스러운 50주년, 100주년을 맞이하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 더욱 큰 분발이 있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축사
이기문
전 국어연구소장ㆍ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