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연구원의 창립 이후 지금까지의 정책에서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어문 규범의 제정 및 관리 기능이다. 이를 바탕으로 국어사전, 국민의 국어 능력 향상, 한국어 교육 등으로 영역이 확장되어 왔다.
초창기인 1990년대에는 “표준국어대사전” 편찬에 국어연구원의 역량이 집중되었다. “표준국어대사전” 편찬을 위해 ‘사전 편찬실’이 설치되었다. 이 당시 사전 편찬과 관련된 인력과 예산이 국어연구원 인력과 예산의 거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사전 사업의 비중이 막대했다. 국어사전은 어문 규범을 근간으로 하는 국어연구원의 사업 전반에 영향을 주었다. 사전 편찬 과정에서 규범과 관련된 내용이 결정되고 정비되었으며 어문 규범 외에도 북한어, 문법, 방언, 어휘, 국어 정보 처리, 말뭉치 구축과 관련된 경험과 기술이 축적되고 연구 역량이 강화되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어문 규범의 준거인 동시에 국어 문화의 총체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국가가 직접 어문 규범의 준거를 제시하여 언어생활을 표준화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또한 비교적 일찍이 전자사전의 형태로 개발이 되어 인터넷 웹 사전으로 발전하였으며 현재는 전자수첩, 인터넷 포털은 물론 스마트폰에서도 사용되는 대표적인 국어사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림 1-2] 국립국어연구원 현판식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안병희 국립국어연구원 초대 원장 1991. 1. 23
사전 편찬이 끝난 2000년부터 어문 규범, 남북 언어 통합, 국어 정보화, 지역어 보존과 같은 사업이 중심이 된 것은 사전 편찬 과정의 경험과 연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국립국어연구원의 사업은 사전을 중심으로 세부적인 어문 규범의 관리 및 보급, 한민족의 언어 표준화, 남북 언어 통합, 한국어 세계화, 국어 정보화와 같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2000년에는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 개정되었고 이후 “표준국어대사전”을 통해 규범이 어느 정도 확립되면서 국어의 정확하고 객관적인 연구를 위한 실태 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국가가 일방적으로 언어 기준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언어 현실에 대한 정확한 실태 조사를 통해 언어 변화와 국민의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좀 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언어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수요자를 고려하는 국어 정책의 필요성이 강조되어 국가 수준의 거시적인 언어 정책을 수립하는 것에서 국민의 국어 생활에 필요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까지 언어 정책 수립과 집행을 일원화하여 추진하는 방안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시대적인 변화를 대변하는 것이 2004년 11월 11일 국립국어연구원에서 ‘국립국어원’으로 이름을 변경한 것이었다. ‘연구’라는 단어를 기관명에서 제외한 것은 연구 영역에만 머물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의지와 정책 방향을 드러낸 것이었다. 이러한 태도의 변화는 국립국어원의 직무를 규정한 내용에서도 드러난다. 기존의 ‘조사 연구 업무’ 위주에서 ‘정책 개발과 연구 활동’ 위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국립국어원은 2004년 11월 30일 그때까지 문화관광부에서 수행하던 국어 정책 기능을 이관받아 국어 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좀 더 직접적으로 수행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정책 연구에서부터 수행 기능까지 종합적인 기능을 갖추게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국어 정책의 환경 변화에 따라 그동안 어문 규범과 사전에 집중되었던 정책 과제 또한 변화하게 되어 국민의 국어 능력 향상과 한국어 보급이라는 과제가 중심 과제로 새롭게 등장하였다. 특히 한국어 보급은 한국의 국력 신장과 한류 열풍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활발하게 진행되어 ‘세종학당’ 사업으로 본격화되었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 결혼 이주 여성, 새터민의 증가에 따라 다문화 가정에 대한 한국어 교육이 중요한 과제로 새롭게 등장하였다. 이 당시에 국어원은 조직을 세 개의 부서에서 여섯 개의 팀으로 재편하고 홍보 대사를 임명하고 홍보 출판을 강화하는 등, 양적인 팽창의 변화를 겪게 된다. 2008년에는 “표준국어대사전”이 웹 사전으로 개정되어 발표되었다. 이 무렵에 국립국어원의 직무가 ‘국어의 발전과 국민의 언어생활 향상을 위한 정책 개발과 연구 활동’에서 ‘정책 개발’ 대신 ‘사업 추진과 연구 활동’으로 변경되었는데 이는 국립국어원의 대외 활동이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2009년 5월에 정책 기능이 다시 문화체육관광부로 이관되면서 국립국어원의 기능과 조직이 개편되었다. 국립국어원은 크게 어문연구실, 공공언어지원단, 교육진흥부로 개편되었는데 이는 기존에 있던 3개 부서의 체제를 이어받은 것이었지만 이전과는 기능상 차이가 있었다. 어문연구실은 국어 연구 기능을 수행하고 공공언어지원단과 교육진흥부는 사업 수행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조정되었다. 이 조직 개편에서는 공공언어에 대한 지원 강화와 문화체육관광부 민족 문화과와의 인적 교류가 중요시되어 국립국어원의 학예연구직이 민족문화과에서 근무하고 국립국어원에는 기존의 학예연구직이 배치되던 자리에 행정직이 배치되는 순환 근무제가 도입되었다. 이러한 현재의 체제는 국립국어원의 직무를 사업 추진에 필요한 연구 활동으로 해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주요한 정책 결정 기능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수행하고 국립국어원은 그러한 정책의 기반이 되는 연구와 사업을 추진하는 이원적 체계가 된 것이다. 앞으로도 이 두 가지 영역을 어떻게 조화해 나가느냐가 국립국어원의 방향 설정과 관련된 주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조직 개편 이후로 추진된 주요한 사업으로는 “개방형 한국어지식대사전” 편찬 사업을 들 수 있다. “개방형 한국어지식대사전”은 기존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벗어나 국어 지식을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체계이다. 여기에 한국어 학습을 위한 외국어 사전이 덧붙는데 이 사전은 편찬 방식에서도 일반인이 사전 편찬에 참여하는 위키피디아 방식을 채택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개방형 한국어지식대사전”은 국립국어원이 규범의 관리뿐 아니라 국어와 관련된 지식을 관리하는 주체로 기능을 확대하겠다는 의미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