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전의 충격이 아직 가시기도 전인 1948년 12월, 일본 정부는 국회에서 통과된 국립국어연구소 설치법을 공포하였다. 이에 따라 이듬해인 1949년 1월에는 국립국어연구소가 정식으로 설립되었다. 필자가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다름 아닌 도서실이었다. 안내자는 명치 시대(明治時代) 이래의 일본어학 관계 도서를 최대한 수집해 놓았다고 자랑스럽게 설명해 주었다. 실제로 도서실에는 잘 분류된 일본어학 관계 도서가 서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러한 도서 수집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수십 년에 걸쳐 많은 예산과 정성을 기울인 결과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일본의 경우, 명치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자국어 연구의 성과는 방대한 분량에 달한다. 그러한 연구 성과를 끈질기게 수집하는 일 자체가 보통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 곳에 수집 정리된 자료는 연구소 자체의 연구는 물론이려니와 외부의 연구자들이나 일반인에게까지도 든든한 의지가 될 수 있다.
그 한 가지 사례를 들어 보기로 한다. 일본의 인기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松本淸張)의 장편 추리 소설 『모래 그릇』(1961)에는 바로 이 국립국어연구소가 등장한다. 살인 사건을 수사 중인 경시청(警視廳)의 이마니시(今西) 형사가 범인의 단서를 캐기 위하여 이곳을 찾은 것이다.
그 연유는 대충 이렇다. 동경에서 한 노인이 살해된다. 수사 과정에서 그 노인은 살해되기 직전, 한 젊은이와 스낵바에서 술을 마신 사실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들의 신원은 좀처럼 밝혀지지 않는다. 유일한 단서는 살인 용의자인 젊은이가 노인에게 안부를 묻는 가운데 썼다는 '가메다[kameda]'라는 말 한 마디뿐이다. "가메다는 지금도 변함이 없겠지요?"라고 한 말을 종업원 아가씨가 지나는 길에 어렴풋이 들었다는 것이다. 일본어에서 '가메다'는 인명(人名)일 수도 있고 지명(地名)일 수도 있다.
이마니시 형사는 '가메다'가 지명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렇다면 피살자나 살인 용의자는 이른바 '동북변(東北弁)'이라는 방언이 통용되는 아키타 현(秋田縣)의 '가메다(龜田)'라는 곳과 연고가 있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이 추리는 잘못된 것으로 밝혀진다. 피살자인 노인은 동경에서 살해되기 전까지 엉뚱하게도 동북 지방과는 반대쪽인 서부 지방의 오카야마 현(岡山縣)에서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마니시 형사는 실망하지 않고 추리를 계속한다. 오카야마 현 지도를 사다가 지명을 조사한다. '가메노 코(龜甲)'라는 지명을 찾아낸다. '코(甲)' 자가 '가메다(龜田)'의 '다(田)' 자와 비슷하여 혼동을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도 있지만, 종업원 아가씨는 눈으로 글자를 본 것이 아니라 귀로 말을 들었기 때문에 '가메노 코'를 '가메다'로 혼동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마니시 형사는 경시청 광보과장의 도움으로 백과사전에서 일본의 방언 구획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된다. 그렇다면 '동북변'과 비슷한 방언이 다른 지방에서 쓰이는 일은 없을까? 이마니시 형사의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광보과장은 국립국어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를 소개하면서 찾아가 보라고 권한다.
이렇게 하여 이마니시 형사는 당시 동경의 히토쓰 바시(一橋)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던 국립국어연구소를 찾아가 '동북변'과 흡사한 방언이 서북단(西北端) 시마네 현(島根縣)의 이즈모(出雲) 지방에서도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이마니시 형사는 시마네 현 지도에서 드디어 '가메다케(龜嵩[kamedake])'라는 지명을 찾아낸다. 피살자인 노인과 살인 용의자인 젊은이는 바로 이 '가메다케'와 연고를 가진 인물들이었다. 스낵바의 종업원 아가씨는 살인 용의자가 쓴 말 가운데 나오는 지명 '가메다케'를 '가메다'로 잘못 들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동북변'이나 '이즈모' 방언에서는 다같이 어말 음절이 약하게 들리는 것이다. 수사의 실마리가 조금씩 풀려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다.
이처럼 마쓰모토 세이초는 이 소설에서 방언을 절묘하게 이용하고 있으며, 수사의 실마리는 국립국어연구소의 도움을 얻어 풀리게 된다. 연구소에 수집되어 있는 자료는 형사에게도 결정적인 도움을 준 셈이다.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재래식 도서는 별로 필요가 없다고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은 듯하다. 인터넷을 통한 전자 서적이 날로 불어나고 있는 데다가 자료의 검색과 입수가 점차 쉬워지고 있기 때문에 재래식 도서의 수요가 날로 줄어들 것이란다. 무심히 들으면 일리가 없지는 않으나 거기에는 고려해야 할 점이 분명히 있다.
사실 종래와 같은 종합 도서관이나 대형 도서관, 예컨대 국립중앙도서관이나 대학중앙도서관은 책을 꽂아둘 공간도 문제려니와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출판물을 빠짐없이 수집하기가 지극히 어려워졌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식이 도서관별로 장서를 특성화하자는 것이었다. 인터넷으로 자료를 검색 교환할 수 있는 만큼 모든 도서관에서 똑같은 자료를 반드시 구비해야 할 필요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가령 대학 도서관이라면 전공별로 대학 특성에 맞는 특정 분야의 장서를 집중적으로 수집하고 전문적으로 관리하여 타 대학에서도 인터넷망을 통하여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도서관 운영에 소요되는 예산과 인력을 절감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며, 일부의 대형 종합 도서관을 제외한 대부분의 도서관을 전문화, 소형화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현재 이러한 작업이 얼마만큼 진척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할 일로 생각된다.
국립국어연구원은 명실공히 우리나라의 국어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 할 기관이다. 국어정책의 방향을 잡기 위해서는 그 토대가 되는 각종 기초적, 종합적 연구가 불가피하게 요구된다. 당연히 국어 연구에 필요한 모든 자료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국립국어연구원은 이러한 자료를 빠짐없이 갖추고 있어야 한다. 개화기 이래 국어 연구의 역사도 어느덧 1세기를 헤아리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들 자료가 빠짐없이 잘 갖추어진 도서관은 어디에도 없다. 국어 연구의 길을 걸어본 사람이라면 개화기 이래 1970년대경까지의 연구 자료가 얼마나 접근하기 어려운지를 경험했을 것이다. 시대적 상황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기는 했으나 이제부터라도 어느 한 곳에는 모든 자료가 모아져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임무는 국립국어연구원의 몫일 수밖에 없다.
수집 대상으로는 우선 국어 연구의 토대가 될 수 있는 원문 자료가 있다. 개화기 이래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쏟아져 나온 관보와 각종 신문, 교과용 도서, 계몽서, 문법서, 사전, 외국어 학습서, 외국인의 국어 연구서, 잡지, 동인지, 학보, 창작집 등 그 범위와 종류는 다양하고 광범하나, 어디엔가는 반드시 수집되어 있어야 한다. 연구 성과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이러한 원문 자료를 지금으로서는 직접 수집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값이 비싸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경우에는 복사판을 준비해도 상관없다. 국립국어연구원에 이러한 자료가 갖추어진다면 모든 연구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인터넷 시대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자들에게는 여전히 자료 입수가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단행본은 그런 대로 접할 수가 있으나 전국 대학의 학위 논문을 비롯하여 대소 학회나 학과 단위의 학회에서 쏟아져 나오는 학술 연구지 등을 누구나 손쉽게 구해 보기는 아직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국립국어연구원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 연구자들의 고충을 해결해 주어야 한다. 당연히 국립국어연구원에 수집된 도서 자료는 인터넷을 통하여 원문을 검색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지금도 국립국어연구원의 홈페이지에는 독립신문과 국어사 관련 원문 자료 등이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있어 도움이 되고 있으나, 앞으로는 희귀 자료나 특수 자료까지도 찾아볼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전문적인 국어 연구자들은 물론이려니와 일반인도 손쉽게 자료를 검색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사실 국립국어연구원이 창립된 지 10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일반인들에게까지 그 존재가 충분히 알려졌다고는 할 수 없다. 국립국어연구원이 문헌 자료나 연구 자료를 최대한 갖추고 있다면 홍보 차원에서도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정 분야의 관계 문헌이나 자료가 빠짐없이 수집된 도서관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보고 싶은 자료를 찾아 여기저기를 기웃거려야 한다. 시간적으로도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허비되는 기력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다.
국립국어연구원은 그러한 고충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 국어에 관한 어떤 자료라도 국립국어연구원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하며, 거기에 없는 자료라면 적어도 우리나라 안에서는 구해 보기 힘들다는 점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연구자나 일반인들이 처음부터 국립국어연구원을 찾을 것이고, 국어연구원의 존재는 차츰차츰 널리 알려질 뿐 아니라, 평판 또한 좋아질 것이다.
자료의 수집은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다. 예산도 문제려니와 무엇보다도 시간이 문제가 될 것이다. 예산이 확보된다고 하더라도 단기간 내에는 결코 달성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장기간의 계획 밑에 수집 사업이 펼쳐져야 한다.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국어 연구자가 평생에 걸쳐 수집해 놓은 장서를 기증 받는 방법이다. 정년을 앞두고 장서 처리를 걱정하는 연구자가 있다면 일정한 기준으로 그 장서를 인수하여 국립국어연구원에서 정리, 보존하는 방법이다. 개인별 기념 문고라도 만들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사정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장서 한 권 한 권에 원소장자(原所藏者)의 이름과 기증 받은 사실을 표시해 두는 정도도 좋을 것이다.
일본의 경도(京都)에 있는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는 국립 기관인데다가, 지금은 서양에까지 그 명성이 널리 알려져 해마다 각국에서 일본 연구자가 초빙되는 전문 연구기관인데, 그 도서실의 장서 한 권 한 권에는 그 책의 구입을 요청한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다. 각자의 연구에 필요한 도서를 신청한 후, 도서가 들어오면 그 사실을 책에 기록으로 남겨 언제 누구의 요청으로 그 책을 구입했는지 알 수 있게 해 놓은 것이다. 도서 자료를 이용하면서 책을 구입해 놓은 선배 학자의 이름을 만난다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이와 비슷하게 도서를 들추다가 이전 소장자 이름을 접한다면 그 나름의 감회가 따를 것이다.
기증자가 늘어남에 따라 복본(複本)이 많아져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대여섯 정도의 복본은 문제가 될 리 없다. 대개의 경우 복본이 문제가 되는 것은 서가가 모자란다는 이유 때문인데, 그렇지만 않다면 복본을 겁낼 이유가 없다. 자유 열람실을 만들어 복본을 분산시켜도 좋고, 연구원 내의 연구원들에게 대출해 주어도 좋을 것이다. 복본이 생길 것을 걱정하기보다 그 운영 방안을 강구하면 될 것이다.
새 청사도 마련하고 10년의 역사를 쌓게 된 국립국어연구원이라면 적어도 다음 10년 동안은 위에서 제안한 대로 도서 수집을 한 가지 과제로 삼아 볼 만하다. 서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 50년쯤 후에라도 국어연구 전문가는 물론 일반인들까지도 국립국어연구원의 도서 자료를 이용하면서 만족스럽게 생각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터넷 정보화가 아무리 진전된다 하더라도 국어에 관련된 문헌이나 도서가 어디엔가는 한 곳에 모아져 있어야 한다. 구시대적 감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전자 도서나 자료는 정보에 지나지 않는다. 이용하기에는 편리할지 모르나 어딘지 실체가 없는 자료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쇄본 도서야말로 실체감을 안겨 줄 수 있는 자료이며, 그렇기 때문에 국립국어연구원만이라도 모든 도서 자료를 한 곳에 수집해 두어야 하리라고 생각된다.
회고와 바람
국어연구원의 한 가지 과제
송 민 / 제3대 원장 역임·전 국민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