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3월부터 2001년 2월까지의 근무 기간은 국어연구원으로서는 매우 중요한 변화기가 아니었던가 싶다. 2년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일개 서생(書生)이 전혀 성격이 다른 행정 업무를 보았으니 뭐 하나 제대로 해낸 일은 없다. 이 기간 국어연구원에 근무한 경험을 되짚어 보니 한편에는 몇 가지 안 되는 기쁨과 다른 한편에는 수많은 미안함과 아쉬움이 대비된다.
연구원의 부장직은 이른바 '겸임'이라 해서 대개 외부 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교수들이 자기 일은 자기 일대로 다 하면서 연구원 일도 함께 맡아본다. 이런 방식의 근무는 당사자인 나에게는 매우 피곤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연구원이나 녹을 내려 주는 나라에 미안한 일이었다. 이런 이중생활을 겪으면서 옛날에 흔히 있었다고 하는 두 집 살림에 비유하여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 정리하였다. '이 집 가도 미안하고, 저 집 가도 미안한' 것이 바로 두 집 살림 하는 사람의 심정을 요약한 말이다.
정말 어려웠던 일은 생전 조직 생활이라고는 해보지 않던 사람으로서 무슨 급작스러운 일거리가 생겼을 때 이 일들을 나눠 맡기는 것이었다. 연구원도 관공서인지라 부질없는 일도 많았는데, 연구원들은 대개의 경우 이 가욋일들을 소리 없이 해 주어서 때우고 넘어갔지만 지금까지도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기간에 『표준국어대사전』이 나왔다. 중요한 일들은 앞의 분들이 다해 놓으셨는데 정작 이 사전의 머리 부분에 이름이 실린 것은 미안한 일 중의 하나이다.
가장 기분이 좋았던 일은 역시 새로 지은 청사에 입주한 일이다. 거리는 멀어져서 매일 100리 길을 출퇴근해야 하게 되었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에 올라가고, 냉난방이 자동으로 되는 현대식 사무 공간에서 근무해 보는 꿈을 실현한 것이 바로 신청사 덕분이다. 나흘을 새 건물에서 근무하고 이틀은 학교로 나갔을 때, 학교의 연구실 환경이 더 퇴락해 보이게 만들었지만, 이런 건물에 들어와서 한 공간을 차지하고 근무를 해 보았으니, 나라에 세금을 내면 돌아오는 것도 있구나 하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신청사가 기능적으로는 썩 좋은 건물이지만, 그렇다고 먼저 근무하던 덕수궁 석조전이 나빴다는 것은 아니다. 덕수궁은 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휴식하러 오는 좋은 공간이다. 그런 곳에 매일 출근하여 근무한다는 것도 작은 축복이었다. 비록 실내는 환기가 잘 안 되었고,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구내 식당으로부터 음식 냄새가 침투해 들어오는 일이 있었지만, 매일 궁궐에 무상으로 출입할 수 있다는 기쁨과 궁내의 수목이 가져다 주는 경관과 내음, 특히 계절마다 고궁의 경관이 변화하는 모습을 매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누리기 어려운 일종의 특권이었다. 여러 연구원들은 점심 식사 후 이런 덕수궁의 뒤란 길을 따라 산책하기를 즐겼다.
이 시기에 《한국어진흥원》(가칭)이 국어연구원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상태에서 출범하게 된 것도 보람 있는 일 중의 하나이다. 이 기구는 우리말을 세계에 펼치기 위하여 필요한 업무를 총괄하자는 야심을 가지고 출범하게 된 것이다. 그간 한국어 보급 업무는 예산도 적었지만 책임을 지는 기구가 없이 교수들 중심으로 거의 임시적 형태의 모임을 통해서 이루어져 왔던 것인데, 비록 민간 단체의 형식이지만 이를 관장하는 기구가 탄생하고, 예산도 장기적으로 확보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어떤 일이든 밖에서 보는 것과 직접 안에 들어와서 보는 것이 판이하게 다를 경우가 많다. 밖에서 보았을 때 공부와 관련하여 가장 아쉬운 것 중의 하나는 왜 우리나라 국어연구원에서는 그 절실한 국어 계량 작업을 안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분야가 이론 및 실제에서 거의 제로 상태에 가깝다. 이 방면에서는 일본 국립국어연구소의 업적이 늘 부러웠는데, 그들이 했던 계량 연구, 조사 연구들 중에서 중요한 것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부인 잡지의 용어·현대어의 어휘 조사, 언어생활의 실태-백하시(白河市) 및 부근의 농촌, 종합 잡지의 용어- 현대어의 어휘 조사, 현대 잡지 90종의 용어 용자(用語 用字), 전자계산기에 의한 신문의 어휘 조사, 고교 교과서의 어휘 조사, 일본어 교육을 위한 기본 어휘 조사, 고교·중학교 교과서의 어휘 조사, 텔레비전 방송의 어휘 조사"
그러나 연구원에 들어와서 나라의 일이 어떤 식으로 처리되는지 알고 보니 이런 일을 국가 기관에서 실천해 내는 일은 첩첩산중을 헤쳐 나가야만 하는 일과 같았다. 우선 예산을 확보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관련 공무원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런데 이 일은 뒤에서 개미처럼 지루한 작업을 해야 하는 반면, 결과는 종이 한 장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재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업무관으로 볼 때는 그리 매력적인 과제가 아니다. 또 무엇보다 계량 전문가도 있어야 하는데 국내에는 없다. 요컨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들이 너무 흩어져 있고, 그 하나하나를 처리하는 데 단계가 많고 번거로워서 개인의 소망 하나만 가지고는 터무니가 없는 일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국가 연구 기관에서 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끝내 실현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이것 말고도 예산이 많이 들거나 장기적으로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개인의 힘으로 이루기 어려운 기초적인 연구 과제들이 많다. 이런 과제들이야말로 국립국어연구원이 해야 할 일들이다. 이러한 과제들이 언제나 성취될까 생각하면서 연구원의 앞날과 관련하여 기대되는 일이 하나 있다. 모든 기구는 그것을 움직이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이 기관에 근무하면서 국어 연구에 종사하는 연구원들의 학문적 역량과 수준은 대단히 중요하다. 국립국어연구원의 발전을 위해서 중요할 뿐 아니라, 나라의 어문 연구 수준의 향상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현재 연구원들 중에는 국어 정책이나, 규범, 사전 등의 문제라면 국내 최고 수준의 이론과 실무 지식을 갖추고 있는 분들이 많다. 이런 분들이 연구원을 벗어나서 대학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대학에서 이 기관에 들어와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될 정도로 연구원의 위상을 격상시켜 가야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자연 계통에는 그런 대접을 받는 국가 연구기관이 많지 않은가. 사실 연구 인력의 수준만 제대로 제고된다면 연구원의 발전이나 국어학 연구의 발전은 자동적으로 뒤따르게 될 것이다. 이러한 꿈은 연구원 자신이 연구 역량을 키워 나감으로써 확보해야 될 일이기도 하지만, 주변에서도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국어연구원에서 앞으로 해야 하는 일거리 몇 가지를 적어 두는 것으로 이 귀한 지면을 할애해 준 데 대한 보답으로 삼을까 한다. 국어연구원에서 해야 할 일은 주로 인력과 비용,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개인 연구자들로서는 하기 어려운 성격의 작업들이 될 것인데,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하나는 수량적 측면에서 국어를 파악하는 작업이다. 이 일은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야 할 필수적인 조사 작업인 동시에 장기적, 주기적으로 되풀이되어야 하므로 국어연구원의 업무 성격에 꼭 들어맞는다. 다른 하나는 질적 측면에서 국어를 관리하는 일이다. 국어연구원에서 국어사전을 만들어냈지만, 바로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질적으로 정밀하게 검토하는 차원에서 본다면 부족한 점이 많다. 이 작업 역시 처리해야 할 대상 어휘가 방대하며, 또 새로운 단어가 끊임없이 생겨나기 때문에 나라 안의 어디에선가 해야 할 일이라면 역시 국어연구원의 일이다. 여러 가지 핑계가 많아 아무런 기여도 못한 2년이어서 미안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이런저런 일거리를 마치 숙제처럼 적어 두게 되니 다시금 미안하다. 밖에서라도 긍지에 찬 국어연구원, 알찬 연구 성과를 내는 국어연구원이 될 수 있도록 정신적으로나마 지원할 것을 약속한다.
회고와 바람
국어연구원의 새로운 도약을 바라며
김광해 / 제5대 어문규범연구부장·서울대학교 교수